“지금은 대개 남의 것을 못 빼앗아서 한이요, 남을 못 이겨서 걱정이요,
남에게 해를 못 입혀서 근심이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남에게 주지 못하여 한이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요, 남을 위해 주지 못하여 근심이 되리라. (중략)
지금은 대개 사람들이 죄짓기를 좋아하며, 죄 다스리는 감옥이 있고,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국한을 정하여 울과 담을 쌓아서 서로 방어에 전력하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죄짓기를 싫어할 것이며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국한을 터서 서로 융통하리라.
또 지금은 물질문명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위없는 도덕이 굉장히
발전되어 인류의 정신을 문명시키고 물질문명을 지배할 것이며 물질문명은 도덕발전의 도움이 될 것이니 멀지 않은
장래에 산에는 도둑이 없고 길에서는 흘린 것을 줍지 않는 참 문명세계를 보게 되리라”
<대종경 전망품 20장>
우리 역사의 격동기요 사상의 일대 전환기였던 20세기 초, 새 회상 원불교는 시작됐습니다. 묵은 세상을 거두어낼 새 문명의 패러다임이 절실하던 이 때,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는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참 문명세상, 일체생령이 은혜 속에 하나 되고 공존하는 도덕세상 건설을 위해 새 회상 원불교를 창건하였습니다.
이후100년
‘, 물질이개벽되니정신을개벽하자’는개교표어는원불교100년의“지금은 대개 남의 것을 못 빼앗아서 한이요, 남을 못 이겨서 걱정이요, 남에게 해를 못 입혀서 근심이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남에게 주지 못하여 한이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요, 남을 위해 주지 못하여 근심이 되리라.
(중략) 지금은 대개 사람들이 죄짓기를 좋아하며, 죄 다스리는 감옥이 있고,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국한을 정하여 울과 담을 쌓아서 서로 방어에 전력 하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죄짓기를 싫어할 것이며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국한을 터서 서로 융통하리라. 또 지금은 물질문명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위없는 도덕이 굉장히 발전되어 인류의 정신을 문명시키고 물질문명을 지배할 것이며 물질문명은 도덕발전의 도움이 될 것이니 멀지 않은 장래에 산에는 도둑이 없고길에서는 흘린 것을 줍지 않는 참 문명세계를 보게 되리라”
<대종경 전망품 20장>
한결같은 지향이었습니다. 눈앞의 일체생령이 모두 부처요, 생활이 곧 수행이 되어야한다는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무시선 무처선無時禪無處禪’의 실천적 진리관은 원불교 100년을 지탱해온 토대였습니다. 수양과 연구와 실천은 한 몸이요, 교법의 깨달음 역시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는 영육쌍전靈肉雙全이사병행理事竝行의 이념은 원불교의 100년을 움직여온 동력이었습니다. 이렇듯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정신개벽운동에 정진해 온 원불교가 개교 100년을 맞습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진단대로 물질문명과 과학 기술은 눈부신 진전을 이루어 인류문명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습니다. 하지만 풍요와 편리가 증가하는 만큼 마음은 피폐해지고 세상은 안정을 잃었습니다. 물신숭배의 사회풍조는 생태계 파괴, 사회경제적 불균등을 부추기고, 종교의 벽과 이념의 벽은 여전히 높아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는 정신개벽운동으로 시대문명의 균형추를 바로 잡고, 도덕문명과 과학문명이 조화롭게 병진되는 참 문명세계를 이 시대에 열어가는 것이야말로 개교100년의 참된 소명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개교 100년, 원불교는 이제 세상의 공물公物입니다. 도덕의 대의가 통하는 새 문명세상, 진리로 하나 되고 공존하는 은혜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일은 원불교의 소망일뿐 아니라 이 시대의 종교가 추구해야 할 시대적 가치, 인류가 함께 이루어가야 할 참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제2의 개교’라는 결연함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떨쳐 일어나겠습니다. 원불교가 세상의 희망이 되고, 일체생령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낙원세계를 열어가는 주체로 거듭날 것을 선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