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경성에 오시다”
서울원문화해설단 지상강의(紙上講義)

4강 : 원불교 백년의 역사-③
1. 10장면으로 본 원불교 100년
5)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봉안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고 말했다. 이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한 두렷한 기틀’이라는 표현이 곧 일원상(一圓相)을 뜻하며,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상에 대한 첫 표현이다.
원기4년(1919)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는 거처하는 출입구 문미(門楣) 벽지에다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으로 그려 일원상을 직접 형상으로 드러냈다. 소태산 대종사는 여러 면에서 일원상의 소식을 추상적인 표현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혹은 노래 혹은 직접 그려 보이기까지 하며 조금씩 인식시켜 나갔으며, 원기20년(1935) 익산총부에 대각전을 건축하고 불단에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인 일원상을 정식으로 봉안했다.
6) 소태산 대종사 열반하다.
원기26년(1941) 초, 소태산 대종사는 대중에게‘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구공(九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전법게송을 설하고, 원기27년(1942) 가을부터 열반 당년 총회까지 각 지방을 순시하며 회관과 교무들 사는 모습을 일일이 살펴 보셨다. 또한 열반을 한 달여 앞둔 원기28년(1943) 총회 무렵에는 제자들에게 법복을 한 벌씩 지어주며 부촉할 일을다 부촉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것이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을 암시하는 것임은 알지 못 했다.
5월 16일 총부예회에서의 생사 법문을 마지막으로 6월 1일 오후, 28년간 만 생령과 전 세계를 위하여 법을 전한 소태산대종사는 세수 53세로 여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