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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도상의
<마음공부 이야기>

그 소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글 정도상(법현) 소설가 · 남서울교당 교도

 

 

1960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전북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천만 개의 불꽃으로 타올라라>,<친구는 멀리갔어도>, <찔레꽃>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2003년 장편소설 <누망>으로 단재문학상 수상. 2008년 제7회 아름다운 작가상.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이자 재단법인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 사무처장으로 활동 중이다.

 


義(의)는 ‘옳다’라는 뜻을 지닌 상형(象形), 즉 그림으로 만들어진 문자이다. 義는 ‘羊’이라는 글자 밑에‘我’가 있는 형태의 그림인 것이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출처를 기록해두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義가 탄생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에 어느 선비가 살았는데, 세상이 어지러워 속세를 떠나기로 하고 양 몇 마리를 데리고 산으로 갔다. 선비는 아침마다 양을 데리고 나가 풀을 뜯게 했고, 밤에는 늑대를 비롯한 동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어느 날, 풀밭에서 양을 치다가 ‘양이란 녀석들은 내가 없으면 모두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비는 양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더욱 더 열심히 보살폈다. 선비의 보살핌 속에서 양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선비는 양젖을 짜서 먹었고, 양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고 또 집도 마련했다. 양으로부터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면서 선비는 부족함 없이 살았다. 또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선비는 풀밭에서 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저 양이 없으면 내가 죽는구나.’ 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부터 선비는 양을 모시고 살았다.

 


너(羊)’가 없으면 ‘내(我)’가 죽는다, 라는 선비의 깨달음. 그러나 무한경쟁사회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너(羊)’가 있으면 ‘내(我)’가 죽는다. 너를 밀어내고 패자로 만들어야 내가 승자가 된다. 심지어 학교 교실에서 청소년들에게 공공연히 이것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것을 교육이라고 이름붙이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등을 하는 것,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것이 삶의 미덕이 되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세상이 바로 여기 물질개벽의 세상이 아니던가. 물질개벽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나보다 강한 호랑이나 늑대며 사자 같은 ‘권력으로 표상되는 그 어떤 것’을 모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저마다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의(義)라는 문자가 지닌 진리, 내(我)가 모시는 양(羊)이란, ‘나 아닌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나보다 허약한 존재를 의미한다. 사회적 소수자, 삶의 근거를 잃고 떠도는 난민들, 삶의 근거를 찾아 떠도는 유랑민들, 개벽된 물질의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마음을 앓는 사람들, 메뚜기 한 마리, 풀 한 포기, 심지어는 한 방울의 물까지도 모두 양(羊)이다.


 

‘너(羊)’가 없으면 ‘내(我)’가 죽는다, 라는 깨달음이 바로 의(義)!

 

마음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원불교의 위대한 스승님들이 마음을 공부하라고 해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삼계화택(三界火宅)을 건너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인가.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이루어져 있다. 욕계는 배의 세계(貪)며 색계는 가슴의 세계(瞋)고 무색계는 머리의 세계(痴)다. 욕계에서는 배의 욕망대로 가슴과 머리가 따르고, 색계에서는 가슴의 욕망대로 배와 머리가 따르고, 무색계에서는 머리의 욕망대로 가슴과 배가 따른다.
여기 삼계에서 마음은 불타는 집(火宅)이다.


마음을 모시는 마음공부는 부처가 아닌 불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이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한다.
즉, 羊 위에 我를 두는 것이 마음공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소태산 대종사님을 비롯한 원불교의 스승님들이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전한 말씀은 혹시 “나를 위한 마음공부가 아니라‘너(羊)’를 위한 마음공부를 하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질이 개벽한 세상에서 현대인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흐름은 ‘불안’이다. 강의실에서 보면 학생들은 수업시간 내내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끊임없이 스마트폰의 화면만 손가락으로 터치(접속)하고 있다. 물질에 종속되어 물질로부터 배제되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누군가와 접속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와의 접속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을 낳는다. 불안이 겹겹이 쌓이면 불행이 되고, 불행은 또 다른 불안을 낳고 영혼을 잠식한다. 대개의 인간은 불타는 집에서 몸부림치며 상처에 상처를 더한다. 그리하여 화상(火傷)의 흔적을 옷으로 가리고 불타는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욕계와 색계에는 불안이 존재할 틈이 없다. 욕계와 색계는 육체와 정신이 빚어내는 온갖 욕망의 드라마들로 숨 가쁜 세계이지만 무색계는 ‘나(我)’가 중심인 세계이다. 욕계와 색계가 느닷없이 미천해 보이고, 시시하고 심심하게 느껴지면 다락방(혼자만의 공간)에 엎드려 찾게 되는 것이 ‘나’인 것이다. 욕계와 색계가 색(色)의 세계라면 무색계는 공(空)의 세계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인간은 그것을 알 턱이 없다.

 


대종사께서 화려한 장엄 대신 마음공부를 강조하신 까닭


무색계는 나(我)의 세계이다. 확고한 나의 세계가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의 세계인 것이다. 절대성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과 망상이며 어리석음(痴)일 뿐이다. 마음을 공부하면 모든게 해결되는 줄 아는 ‘치(痴)의 무색계’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나(我)’를 위해 전념으로 최선을 다한다.
본래의 마음자리인 무아(無我)를 찾아 열심히 마음을 공부하면서도 사람들은 내(我)가 사라지거나 변할까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은 까닭 없는 불안으로 바뀌어 삶을 지리멸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사소한 잘못에 대한 자잘한 고백들로 마음을 장식하는 것은 아닌지. 장식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내면이 허약하다. 그러기에 대종사님께서는 화려한 장엄을 그토록 경계하셨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나(我)’를 가꾸는 것을 마음공부라고 생각한다. 계몽주의 이후 서양의 근대철학은 ‘나(I)’를 발견했다. 중세의 신(God)에 얽매여 있다가 마침내 발견한 는 황홀했고 매혹적이었다. 신과 대등한 관계로 나를 끌어올렸고, 우주만물의 중심으로 그 존재를 위치시켰다. 인간중심주의, 언뜻 보면 대단한 깨달음인 것 같다. 서양인들은 세계의 주체인 ‘나(I)’를 집요하게 탐구했고, 철학적으로 존재론을 거의 완성시키다시피 했다.
‘나(I)’는 언제나 관계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마음공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마음을 모든 것 위에 올려놓고 마치 불상처럼 모시려 들기도 한다. 벽암록에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목불(木佛)을 쪼개 태우는 선사의 이야기가 있다. 불상은 부처가 아닌데도 중생들은 불상을 부처로 모시는 것에 대한 일갈로 읽었다. 마음을 모시는 마음공부는 부처가 아닌 불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이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한다.

 


특별기고 마음공부의 참 목적은 화엄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아란 아가 사라지고 본성(本性)만 남은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연기(緣起)의 중심으로 나를 끌어올리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즉, 양(羊) 위에 아(我)를 두는 것이 마음공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소태산 대종사님을 비롯한 원불교의 스승님들이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전한 말씀은 혹시 “나를 위한 마음공부가 아니라 ‘너(羊)’를 위한 마음공부를 하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입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모로 민망한 노릇이지만 나름대로 궁리를 해본 결과, 마음공부의 목적은 화엄(華嚴)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화엄을 쉽게 풀이하면 ‘너(羊)’를 가꾸면 ‘내(我)’가 가꿔지는 것이다. 서로를 장엄(莊嚴)해주는 것, 너를 꾸미면 내가 꾸며지고, 너를 가꾸면 내가 가꿔지는 것. 존재로서가 아니라 연기로서 ‘너와 나’를 깨닫고, 깨달은 후에는 너의 은혜(四恩)을 받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마음공부의 뜻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얕은 궁리를 해보기도 했다. 아울러 마음공부가 제도화되고 규격화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와 규격이 필요치 않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방편이지 목적이 아니다. 마음을 어찌 문자 몇 줄로 공부할 수가 있겠는가.


미국 고등교육신문의 웹사이트(chronicle.com)에서 한 달에 무려 3,000여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10대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문자메시지를 많이 보냈다는 것은 그 소녀가 하루 평균 100여건의 메시지를 보냈거나 깨어 있는 동안 매 10분마다 거의 한 번꼴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이든 대낮이든 한밤중이든, 주중이든 주말이든, 수업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숙제시간이든, 심지어는 양치하는 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가와 이야기한 셈이고, 이는 그 소녀가 혼자서만 지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과 꿈, 걱정, 희망 같은 것들을 고민하면서 홀로 있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소녀는 이제 다른 친구들이 없을 때, 과연 사람들이 자기 혼자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혼자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웃거나 울어야 하는지 거의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중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소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사막을 가지고 있다. 불안과 상처로 이루어진 사막이다. 그 소녀는 물질개벽의 사막에서 자기밖의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외로워, 놀아줘’ ‘고독해’ ‘나랑 친구할래’의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물질이 개벽되면 될수록 정신의 개벽은 물질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소녀는 물질개벽에 비해 지체되는 정신개벽의 그 틈(世間), 즉 사막에서 고독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글을 읽는 동안 내 안에서 이런 질문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원불교의 마음공부는 바로 이 소녀를 모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소녀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깊이 모시는 것. 단순히 소녀의 존재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소녀의 연기(혹은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곳에 무아가 있고 우리 마음의 본성이 있다는 것. 소녀를 모시는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을 공부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 비로소 일원상의 진리가 세간(世間)에서 구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음을 일원상의 진리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일원상의 진리를 모실 때 겨우 가능해질 것이다. 마음이 일원상의 진리를 모시는 것이란 바로 몸으로 모시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대각 이후 대종사께서 하신 일은 노동과 공부


마음은 물리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절대성의 공간인 도학에 있고, 몸은 물리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상대성의 공간인 과학에 있다. 마음으로는 해왕성 명왕성도 갈 수 있지만, 몸은 바로 여기 물리의 공간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지만, 그것의 전제는 언제나 몸이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일체유심조는 헛된 언어에 불과하다. 마음공부는 마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몸이 관계 맺은 모든 것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대각 이후에 어찌하여 노동에 전념하셨는지 따져 볼 일이다. 대각 이후에 하신 일이 선방을 만들고, 제자들을 모아 밤낮으로 설법하고(부처가 무엇이라고 물으니 ‘호떡’이라고 대답하는 등의 벽암록의 스님들처럼), 교주처럼 살아가시지 않았고 형상을 만들어 우상(偶像)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셨다. 대종사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게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그렇게 뭇 생명을 섬기셨다.
조합을 만들고 땅을 개간하고 숯장사를 하는 등 몸의 움직임(노동)으로 마음공부에 전념하신 것 모두가 섬기려 드셨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오늘의 원불교가 존재하는 근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종사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게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그렇게 뭇 생명을 섬기셨다.
조합을 만들고 땅을 개간하고 숯장사를 하는 등 몸의 움직임(노동)으로 마음공부에 전념하신 것 모두가 섬기려 드셨기에 가능했다.


그 근원에 다른 종교가 가지 못한 길, 원불교만의 길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고독을 잃어버린 소녀(羊)를 위해, 나를 가꾸는 마음공부도 중요하지만 너를 가꾸는 마음공부도 필요한 때가 왔다. 일원상의 진리는 교당에 걸린 일원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열두번씩 변하는 마음 속, 그러나 항심(恒心)을 유지하려고 저 모든 안간힘에 겨우 존재한다.

 

 


신간소설  정도상 작가의  신간 소설
〈은행나무 소년〉


『은행나무 소년』은 2012년 1월부터 5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열두 살 소년이 강제철거와 외할머니의 치매, 힘겨운 첫사랑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가슴 뭉클하게 그려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싸움들이 단순한 선악의 대립이 아닌, 작은 소망과 거대한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소년은 자라고 삶은 계속됨을, 아무리 부조리하고 가혹해 보여도 그것이 결국 구체적인 삶의 모습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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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소식지 10호] 발행인의 편지

    욕심이 아닌 원력으로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란 말이 있다. 근본을 확립하면 길이 생긴다는 말이다. 여유로워졌으면 좋겠다. 그 여유가 더 깊어져서 단전 아래까지 깊숙해져서 웅혼한 교화마당이 되는 것도 좋겠다. 욕심이 아니라 원력으로, 설익은 나의 ...
    Date2013.09.04 By*관리자* Views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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